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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출산 소식을 들었음에도,
쌓인 업무로 인해
일주일간 별궁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보질 못했다.
마침내 오늘,
들뜬 마음으로 옷가지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황궁에서 나와
급하게 달려왔다.
순백을 상징하는 새하얀 머리,
글레시엠 왕가의 핏줄을
증명하는 사파이어색의 눈...
첫째부터 셋째가 그러했듯,
분명 막내또한 자신과 똑닮으리라 생각했다.
...
그렇게 생각했었다.
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흉측하고도
혐오스러운 '그것'을 보기 전에는.
"뭐지, 이 쓰레기는? 횃불 없나?
당장이라도 태워버리고 싶건만."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처음 마주했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인간인 형제들과 달리
수인인 어머니를 닮아서였을까,
짐승의 귀와 꼬리가 달려있었고
순백을 상징했던 하얀 머리칼은 사라진 채
금색으로 물들어있었으니까.
딱 하나, 사파이어색의 푸른 눈만은
플루멘 왕가의 사람이라는걸 증명하듯
온전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욱 날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시답잖은 짐승따위가
플루멘 왕가의 핏줄이라니.
더군다나 수인들을 극도로 박해하는
글레시엠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내 아버지는 혀를 쯧- 하고 차더니
못볼 꼴을 봤다는 눈빛으로 날 흘겨보며
말을 이어갔다.
"별궁을 태울순 없는
노릇이니 베는 편이 낫겠군.
휘말리기 싫으면 썩 꺼져라."
아버지의 살기 서린 명령을 들은 집사들은
망도하듯 방을 빠져나갔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네년까지 베어버릴-"
"대체...대체 어찌하여 지아비가 되는 사람이
자식을 쉽게 베어버린다 말할 수 있으십니까...?"
"짐승의 아이 따위는 애초에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다.
내가 왜 네년을 계속 품어주고
있었는진 생각해봤느냐?
여태까지 순수한 내 혈통들만 잘 낳았으면서
마지막엔 무엇이 부족해 내 핏줄이 아닌,
더러운 짐승의 피가 섞인 것인지..."
"사파이어처럼 푸른 이 눈을 보십시오!!
짐승의 피가 섞였다 한들,
이 눈이 당신의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증명을-"
슈칵—
카아아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아버지의 검이 날 향해 내질러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곧바로
대검을 내세워 아버지의 공격을
재빠르게 맞받아쳤다.
그리곤 이빨을 드러내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 아일 죽이시려면...
제 숨통부터 먼저 끊으셔야 할겁니다!!!"
분노라기엔 덧없이 맹목적인 적대감...
아마도 증오라고 부르는게 맞을 것이다.
그 증오가 가득 담긴 어머니의 눈을
아버지는 본적이 있었다.
과거 자신을 처음 마주했을때 내비쳤던
그 증오심을 다시금 자신에게
불태우고 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공허와 씁쓸함만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약지에 끼워져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내어
어머니의 앞에 던져버리곤
입을 열였다.
"황제의 권한으로 명령을 내리겠다.
내일부로 황후는 반역을 꾀한 죄로
황후의 권한을 박탈 당할 것이며,
남쪽 버려진 마을로 유배 될 것이다.
마차는 준비해둘터이니
속히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거라."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제가 이 아일 지켜내겠단
신념은 수백년이 흘러도 변치 않을테니."
"실없는 것에 집착하는건
신념이 아닌 고집일뿐.
네 아비처럼 언젠가 그 고집이
네년의 명을 달리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방을 빠져나왔다.
아버지가 나간 이후로
힘이 다 빠지신건지,
어머니는 풀석- 쓰러지면서도
금새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이윽고 날 품에 안으시더니
터져나올것만 같은 눈물을 머금고
흐느끼며 말했다.
"우읏..윽...욱......흐...
아가,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정말...정말 미안하단다..."
그때 보였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악몽이었다.